요 며칠간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일은 끝이 보이지 않는 산처럼 해도 해도 줄어들지 않았다. 잠이 부족한 탓이었는지 온갖 신경은 잘 갈린 칼처럼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고, 주위 사람들을 챙길 여유조차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함께 하기로 했던 엄마와의 여행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딸! 우리 단양 여행 잊지 않았지? 엄마는 너무 기대된다.” 아차 싶었다. 엄마의 생일기념으로 나는 엄마와 단 둘이서 떠나는 여행을 준비했었다. 서로 떨어져 지내고 있는 까닭에 엄마는 내가 집에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자주 내려가 기쁘게 해 드리려고 노력하지만 그래도 나는 늘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사랑하는 엄마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드리리라 다짐하고 단양으로 향하는 짐을 꾸렸다.

우리는 최종 목적지인 단양에서 만나기로 했다. 엄마는 광주에서 단양으로, 나는 서울에서 단양으로 같은 목적지를 향해 서둘러 움직이고 있었다. 서울에서 단양까지 두 시간 반의 거리. 가는 동안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며칠 전 다운받아 두었던 음악을 틀었다. 눈을 감고 가사를 음미하고 있는데, 봄 햇살이 살며시 창문에 얼굴을 비비며 노크를 해댔다.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다 문득 가슴이 두근거렸다. ‘봄이 왔구나.’ 봄은 언제나 그리움처럼 아무런 예고도 없이 문득 찾아온다. 그래서 더 설레고 반갑다. 어느새 단양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 나는 미리 예약해 놓았던 대명리조트로 이동했다.

엄마보다 일찍 도착한 까닭에 먼저 숙소에 올라가 짐을 풀었다. 커튼을 젖히고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명지바람이 얼굴을 가볍게 스쳤고, 내게 반갑다고 인사를 하는 듯 했다. 그리고는 자유인이 된 것처럼 침대 위에 온 몸을 던졌다. 하얀 침대시트가 나를 포근하게 감쌌다. ‘아, 편안하다.’ 오랜만에 느껴본 편안함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베란다로 나갔다. 리조트 앞으로 남한강이 물고기 비늘처럼 눈부시게 반짝이며 흐르고 있었다. 그림처럼 환상적인 풍경에 반해 한참을 넋 놓고 있다가 엄마의 도착 전화에 반갑게 엄마를 맞았다.

우리는 온천에서의 휴식을 위해 아쿠아월드를 이용하기로 했다. 물 만난 어린아이처럼 즐겁게 물놀이를 즐기다 몸을 마사지 할 수 있는 바데풀을 이용했다. 엄마는 “딸이 이렇게 신경 써줘서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져서 “엄마와 함께 있으니까 너무 좋다.”라고 참 오랜만에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 본다. 평소 같았으면 잘 하지도 못했을 다정한 말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나도 몰래 웃음이 난다. 아쿠아월드는 온 가족이 즐기기 좋을 건강욕 프로그램, 사우나 시설 및 외부 노천탕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성인의 경우 주중에는 29,000원, 주말에는 33,000원 이며, 소인(3세~초등학생)은 주중 22,000원, 주말 29,000원에 이용 가능하다.

사우나를 마치고 슬슬 배가 고파진 우리는 온달동 지하 1층에 자리하고 있는 ‘한식전문점 평강’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대표 메뉴인 온달마늘정식, 평강마늘정식을 주문했다. 입이 떡 하니 벌어지는 음식들이 정해진 순서대로 나오기 시작했다.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갖가지 종류의 음식이 차려 졌다. 마늘이 유명한 단양답게 마늘로 만든 각종 퓨전 음식이 우리를 즐겁게 했다. 두 가지의 정식은 마늘 샐러드, 들깨탕, 버섯 탕수육, 흑마늘차는 공통메뉴로 제공된다. 다른 것이 있다면 온달마늘 정식은 불고기볶음, 코다리찜, 계절국이, 평강마늘 정식은 장어구이, 돼지주물럭, 된장찌개가 추가로 나온다는 점이다.

지금껏 타 지역에서는 먹어본 적 없는 단양만의 맛깔 나는 마늘정식에 또 한번 정신을 잃고 말았다. 지금껏 지쳐 있던 몸에 에너지를 한껏 충전시켜는 기분이 들었다. 마늘이라고 하면 대부분 맵고 강한 맛이 떠오른다. 마늘 특유의 냄새와 알싸한 맛 때문에 마늘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한식전문점 평강에서는 그런 걱정은 모두 다 놓아 버려도 좋다. 신기하게도 마늘로 만든 모든 음식들이 마늘 냄새가 나지 않았다. 알싸한 맛도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상큼하게 갈린 마늘을 주 원료로 하는 마늘 샐러드를 입에 넣자 상큼한 봄기운이 그대로 전해 졌다. 아울러 산마늘 잎사귀인 명이나물이 반찬에 포함돼 처음으로 명이나물을 맛볼 수 있었는데, 새콤한 맛이 좋아서 자꾸만 손이 갔다. 모든 음식이 몸을 가뿐하게 해 주는 건강식이라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상큼하고 담백한 맛에 어른 아이 누구의 입이라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음식들 때문에 우리는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

단양리조트 투어패키지를 선택해 놓은 상황이라(단양리조트 객실+투어A코스) 우리는 투어A코스를 이용 할 수 있었다. 아침 8시 50분에 출발하는 투어버스를 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A코스는 사인암, 상선암, 하선암을 돌아 관광선을 타고 구담봉과 옥순봉을 4시간 가량 관람하는 것이었다. 버스기사님의 재치 있는 안내에 따라 우리는 지루함 없이 첫 번째 목적지인 사인암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풍경의 사인암은 푸른 강을 끼고 수백척의 기암절벽이 하늘 높이 치솟아 있다. 바위의 윗부분에는 노송이 멋들어지게 자리하고 있어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수려한 절경 때문에 운선구곡이라는 이름이 붙여 졌다고 한다. 단양8경 가운데 제5경이라 불리는 사인암은 조선시대 최고의 화원이었던 김홍도가 멋진 풍경을 보고 한눈에 반해 화폭에 옮겨 담기도 했다. 그는 붓을 들고 열흘간 '화폭에 이 아름다운 경치를 어떻게 담을까?'를 고민하다 결국 그 자리에서는 그리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1년 여간을 고민한 끝에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만큼 사인암의 풍경은 관광객들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다음 코스는 신선이 노닐다 갔다는 상선암과 하선암이다. 선암계곡을 따라 달리는 선암로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안성맞춤! 10km안에 단양 8경 가운데 3경이 자리하고 있어 많은 이들이 찾는다. 상선암은 아치형의 다리 아래쪽으로 층층이 쌓인 바위 아래로 힘차게 흐르는 깨끗한 계곡물을 보는 것이 포인트다. 하선암은 흰 바위가 넓게 마당을 내주고 그 위에 둥글고 커다란 바위가 앉아 있는 형상으로 이 모습이 미륵 같다고 하여 ‘불암’이라 부르기도 한다.

버스는 우리를 싣고 마지막 코스로 향했다. 유람선을 타자마자 나는 배의 가장 높은 곳인 3층으로 올라갔다. 강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그래도 아직 강바람이 차다며 엄마가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 봤지만 우리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순간을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강에서 바라본 구담봉과 옥순봉의 모습은 더욱 빛이 났다. ‘기암절벽의 모습이 어쩌면 저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거대한 자연 앞에 인간은 정말 먼지처럼 작은 존재구나.’하는 생각에 엄숙해 졌다. 구담봉은 생김새가 거북이를 닮아 있을 뿐 아니라 물속 바위에 거북무늬가 있다고 해 구담이라 이름 지었다. 부근의 제비봉과 조화롭게 어울려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하고 있다. 옥순봉은 희고 푸른 바위가 대나무 순 모양으로 힘차게 우뚝 치솟아 올라 있어 옥순이라 불린다. 조선 명종 때 단양 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선생이 석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는 글을 새겨 이곳이 단양의 관문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엄마는 가는 곳 마다 ‘너무 멋있다’란 말을 연발하며 행복해 했다. 엄마의 이런 즐거운 표정을 보니 나도 함께 기분이 좋아진다. 정말 단양에 오기를 잘했다고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사랑하는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감사했다. 특히, 단양리조트 투어패키지로 단양의 명소를 편안하게 반 이상 관람할 수 있었던 것도 우리에겐 너무나 큰 행운이었다. 다시는 못 올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않으리라.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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