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있었던 일화다. 수백 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식당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주인은 식당을 처분하기로 하고 폐점을 준비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단골손님들은 식당을 찾아가 폐점을 반대했다. 그들은 그 식당이 비단 주인만의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오랫동안 줄기차게 드나들며 그곳에 각자 삶의 이야기들을 담아두었기에 식당이 자신의 것이기도 하다는 이유였다.

그렇다.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그것을 찾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식당은 지속될 수 없다. 식당을 찾아오고, 그곳의 음식을 좋아하는 손님이 있어야 식당이 유지된다. 그만큼 오랫동안 식당을 이어오게 한 공이 손님에게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식당 중 100년 이상을 버틴 곳은 단 하나뿐이다. 순탄치 않은 근대사를 보냈다 하더라도 너무 적은 수다. 빠른 시간 내에 구식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쌓아 올리는 게 목표인 산업화와 도시화의 영향이 컸다. 대중 역시 식당을 외식 공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여겼다. 그렇기에 오랜 시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식당이 문을 닫는다고 해도 아쉬워하거나 슬퍼하는 이가 없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지난 세월을 켜켜이 쌓아온 서민의 흔적이 담긴 식당들이 소리 없이 사라져갔다.

서울에서도 오래된 서양식 제과점으로 한때 이름을 날렸던 ‘무과수제과’. 그곳은 1960~70년대 청소년들에겐 미팅의 메카였다. 교복 입은 까까머리 남학생과 단발머리 여학생이 설레는 마음으로 만나 수줍게 인사하고 해사하게 웃던 빵집. 그 시절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에겐 무과수제과점은 첫사랑, 수줍음 등으로 기억되는 애틋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1990년대 후반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의 기세에 밀려 문을 닫으면서 그들이 간직해온 추억도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은 서울 종로에 위치한 ‘이문설농탕’이다. 1904년에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109년째를 맞았다. 하지만 오랜 세월 지켜왔던 터가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는 바람에 옛날 목조 건물을 그대로 놔둔 채 종로 뒷골목으로 이사를 갔다. 일제 강점기, 8·15 광복, 한국전쟁 등 격동의 역사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곳인데 재개발을 이유로 한순간에 오래된 터를 떠나야 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무교동의 추어탕 전문점 ‘용금옥’은 당대 각계각층 사람들의 사랑방 구실을 했다. 1932년 문을 연 이후 광복과 근현대사를 겪는 동안 젊은이들이 모여 시대를 고민하던 곳이었다. 그런 만큼 용금옥을 즐겨 찾았던 이들의 일화도 무궁무진하다. 그중 1973년 남북조절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북한 부주석의 일화가 대표적이다. 회의 중 남측 대표에게 “용금옥의 추탕 맛은 여전합니까?” 하고 물었다는 것. 또 독립운동가인 조병옥 박사는 암 수술 뒤 의식을 회복하고 가장 먼저 용금옥의 추어탕을 찾았다고 한다. 이러한 식당은 존재 자체만으로 손님들의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준다. 지금은 용금옥의 첫 주인인 홍기녀 할머니의 뒤를 이어 손자가 3대째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뱃사공이 마포나루를 주름잡던 시절, 상인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던 ‘마포 진짜 원조 최대포’는 돼지갈비, 소금구이, 돼지껍데기의 역사를 처음으로 쓰며 대한민국 반세기를 서민들과 함께한 곳이다. 이제는 마포나루도 뱃사공도, 밤 깊은 마포 종점의 전차도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마포 돼지갈비만은 여전히 남아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고 있다.

설렁탕집 ‘하동관’과 냉면 전문 ‘우래옥’은 팔판동의 한 정육점과 50년 이상 거래를 이어오고 있다. 이것이 한결같은 맛을 유지하며 역대 대통령을 모두 손님으로 맞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흥미로운 것은 두 식당의 역사만큼이나 정육점도 2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는 것. 거친 변화의 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이들이 있기에 지난 삶들이 녹아든 우리의 음식이 명맥을 유지하며 하나의 문화로서 자리 잡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한식재단에서 조사한 결과 2012년 5월 말 현재 우리나라에 자리한 식당 중 50년 이상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곳은 160여 개다. 그중 재개발과 도시화의 바람을 피해 원래 터와 건물을 그대로 유지하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 하지만 가까운 일본이나 유럽의 소도시만 가도 오래된 여관이나 식당을 지역마다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메뉴판, 테이블, 문짝 하나까지 묵은 손때가 남아 있는 등 옛 모습 그대로다. 그리고 그곳을 찾은 90대 할아버지부터 20대 청년은 각자 자신의 흔적을 더듬으며 음식에 더해 추억의 맛까지 섭취한다. 배 속 허기와 감성의 허기를 함께 채우는 것이다. 이렇듯 오래된 식당은 단순한 외식 공간을 넘어 서민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쌓여 있는 역사의 공간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향토지적재산본부 연구위원이자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는 ‘오래된 식당은 공공재’라고 말한다. “사찰이나 한옥 마을의 집처럼 오래되고 당대를 대변하는 것들은 개인 소유라고 해도 대개 공공재로 여기잖아요. 문화재로 지정해서 함부로 고치거나 훼손하지 못하도록 보호하죠. 오래된 음식점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우리의 굴곡진 역사를 함께 헤쳐나온 곳이니까요. 이 땅의 사람들이 과거에는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즐기며 살았는지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니까요. 따라서 오래된 식당도 우리가 아끼고 지켜야 할 공공재가 되어야 해요.”

하지만 우리는 지금껏 오래된 식당을 보존하는 것에 너무 무신경했다. “1970년대 이후의 근대화 바람은 온 국토를 초토화한 한국전쟁만큼이나 강력하게 오래된 식당을 없앴어요.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지난 세대와 현 세대가 공유할 수 있는 식당이 많지 않아요. 종로나 을지로의 곰탕, 냉면 등을 파는 오래된 식당에서 30대 이하 젊은이들과 마주치기란 피자집에서 70대 노부부를 만나는 것만큼 어렵죠. 그러다 보니 손님의 대물림도 끊기는 거죠. 지금 잘나가는 식당들이 한 세대 이후에도 여전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는 이유예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추억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공간에 새긴 추억이 훨씬 더 강력하다. 함께했던 사람이 없어도 그 공간에만 가면 당시의 모든 것을 그대로 떠올리게 되니 말이다. 오래된 식당이 없어지면 소시민의 삶, 개인의 일상을 추억할 수 있는 매개체도 함께 없어진다. 삶의 애틋함과 낭만은 물론, 서민의 음식 문화와 음식 역사를 대변하는 공간이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다.

“음식 문화를 다른 것보다 하등의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특히 조선 시대 궁중 음식은 보존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근현대를 상징하는 서민의 음식은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고려 시대, 조선 시대 사람들이 먹었던 음식은 오늘날의 우리네 삶과 연결되어 있지 않아요. 그에 비해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우리의 배를 채워줬던 음식들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지키고, 그 가치를 담아내는 것은 이 시대 사람들만이 할 수 있어요. 문화는 삶의 흔적이고, 내 삶이 녹아 있지 않은 문화는 지금에선 의미가 없는 거니까요.”

이것이 바로 오래된 식당을 지켜야 하는 이유다. 자본의 논리에 따르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 전에, 식당은 우리의 음식 문화를 대변하는 역사의 현장이자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보아야 한다. 후대에 물려줄 자산으로, 함께 지켜야 할 문화재로서 오래된 식당의 가치를 인식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에게도 존폐 위기에 놓인 식당을 지켜줄 손님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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